그리하여 경기도에 축구센터를 설립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됐다. 당시에 용인에 축구센터가 있어서 경기도 남 부와 북부에 모두 센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과 김 이사장의 고향이 포천이라는 점 덕분에 포천에 축구센 터를 만들기로 계획됐다. 박지성과 안정환을 비롯해 시 공무원들을 초대해 개회식을 성대하게 열었지만, 예 산 문제로 인해 포천시에서 반대했다. 그래서 김 이사장이 기존에 축구센터를 만들려고 가지고 있던 부여의 땅 3만 평을 팔아 자비를 보태 공사를 진행해 나갔다.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고 바로 공사를 시작할 줄 알았지 만, 설상가상 이제는 공사 허가가 나지 않아 곤란한 상황에 부닥치게 됐다. 공사를 위해 사들였던 땅이 생태 자연 1등급을 받은 지역인 데다가, 아래에 8사단 사령부가 있었기 때문에 군부의 동의도 얻어야 했다. 당시 포천시장의 도움이 없었다면 축구센터의 건립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후문을 들을 수 있었다. 시장이 헬기를 타고, 담당 공무원에게 그 땅을 보여주기까지 하면서 설득했다.

2년 동안의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센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센터의 모습은 김 이사 장의 말에 따르면 세계 최고의 축구센터였다. “제가 전세계를 돌아다녀봤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운동장이 없 어요. 겨울의 북서풍은 병풍처럼 산이 막아주고, 여름에는 동남풍이 불어서 시원하고 모기도 없고 끈적이는 것도 없어서 운동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에요.”

꿈의 결실, FC의정부

김 이사장은 포천에 축구센터를 만든 뒤에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대학생 선수들이 1,2학 년 때 선수한테 맞춰서 체력이 부족하면 체력을 기르기 위한 훈련을 하고, 기술이 부족한 선수들은 기술훈련 을 주로 하면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그런 기회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면서 프로에 진출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자 축구센터의 선수들이 다니고 있는 일동중, 일동고등학교와의 연계를 위해 19~21살의 선수들을 모집해 FC의정부라는 팀을 창단하게 됐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 나이대의 선수들은 대학 선수로 뛰게 되었을 때, 1~3학년이기에 거의 경기를 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올해부터 FC의정부는 새롭게 개편된 K3리그에 참가하여, 1년에 적어도 30경기는 치르면서,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특히나 FC의정부에 몸 을 담은 선수들은 모두 한 번 실패를 겪었던 선수들이다. 누군가는 프로팀에서 쫓겨났거나, 해외로 진출했다 가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오거나, 대학에 조차 진출하지 못했던 선수들이었다. 그런 선수들을 데리고 작년에 김 이사장은 5명을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팀에 입단시켰다.

김 이사장은 FC의정부의 창단스토리를 들려주면서, 또 한 번 한국축구의 승리에만 연연하는 모습에 안타까움 을 드러냈다. “1학년 때부터 경기를 뛰어야 대표선수도 되는 거에요. 그런데 웬만한 감독은 일단 자신들이 축구를 하려고만 해요. 그래서 1,2학 년 선수들이 대부분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되고, 고등학교 때부터 뛰어왔던 선수들이 대학교 오자마자 거의 2년을 못 뛰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게임만 뛰어서 경기력만 향상시킬 수 있다면 상관없어요.” 그는 FC의정부를 이끌고 일단 내년에는 프로에 7~8명을 진출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 후에 프로팀으로의 전환도 계획 중에 있다고 웃으며 이야기를 전했다.

화성FC와 같은 K3리그 팀이 시에서 1년에 3억 정도의 예산을 받는 것에 비해, FC의정부는 시에서 거의 지 원을 못 받고 있는 형편이다. 의정부 시에서 따로 예산을 편성해주는 것은 홈경기 운영에 들어가는 금액뿐이 다. 그래서 이 팀도 김 이사장의 자비로 운영하며, 그가 구단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 니 한국 축구의 승리에만 목을 매는 방식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지만 동시에 이러한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그 의 열정에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박지성의 스승, 김희태

김 이사장에게 가장 낯익은 호칭은 아마도, 김희태 축구센터 이사장이 아니라 대한민국 축구의 전설인 박지 성의 스승이라는 호칭일 것이다. 그가 명지대학교에 감독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무명이었던 박지성은 올림 픽 대표팀에 차출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에게 어떻게 무명이었던 선수를 발탁하게 됐는지 그 배경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는 스카우트가 다 끝난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제 제자 중 에 한 명이 수원공고에서 코치로 일하고 있었는데, 걔가 정말 성실하고 괜찮은 친구가 한 명 있으니까 와서 보시지 않겠냐고 했어요. 그래서 스카우트도 다 끝난 마당에 봐서 뭐하냐고 했지만, 그 코치가 제자이다 보니 까 연습게임이라도 한 번 보기로 했죠.” 그는 연습경기를 보러 갔을 때, 눈에 띄지는 않지만 볼을 아주 쉽게 차고, 빠르지는 않지만 많이 뛰는 한 선수를 볼 수 있었다. 뚜렷하게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전술적 인 공헌도에서 우수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한 번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데려온 것이 바로 박지성이 었다.

하지만 이미 스카우트는 끝난 상황이었다. 여기서 그는 테니스부에 남는 자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테니스 부 감독과 협상에 들어갔다. 이번에 테니스부 남는 자리를 하나 주면, 다음에 축구부에 남는 자리를 하나 줄 테니 이번만 양보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박지성을 테니스부로 입학을 시키고, 고등학교를 졸 업하기도 전에 10월부터 데려와 웨이트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켰다. 그 결과 왜소했던 체격이 전보다 튼튼해 져 대학에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선수로 뛸 수 있게 되었다.

명지대 축구부가 호주로 전지훈련을 갔을 때, 올림픽 대표팀과 연습경기를 몇 차례 가질 기회가 있었다. 박지 성의 잠재력을 알아본 김 이사장은 당시 자신의 대학교 1년 후배인 허정무 올림픽 대표팀 감독에게 계속해서 그를 추천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역시 박지성은 철저한 무명이었던 데다가, 올림픽 대표팀은 해당 연령대 에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자리였기 때문에 선뜻 그를 차출할 수 없었다. 김 이사장은 허정무 前 감독의 의중을 파악하고, 같이 바둑을 두면서 은근슬쩍 박지성을 언급했다. 그러던 찰나에, 박지성이 놀라운 사건을 터뜨렸다. 연습경기 중에 중앙에서 공을 잡더니 올림픽 대표 선수 5명을 단독 돌파하고 골을 넣고야 말았다. 이 모습을 보고 놀란 관계자들이 박지성을 올림픽 대표에 차출하며, 박지성은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후의 이야기는 모든 대한민국의 축구팬들이 아는 바와 같다. 박지성은 올림픽이 끝나 고 일본의 교토 퍼플 상가로 이적하고 히딩크 감독에 눈에 들어 2002월드컵에 나서 포르투갈 전에서 그림 같은 골을 터뜨렸다. 2002 월드컵이 끝난 뒤에는 자신의 은사인 히딩크 감독을 따라 PSV 아인트호벤에 입단, 엄청난 활약상을 보이며 세계 최고의 명문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여서도 맹활약하며 한국과 아시아 축구의 전설로 등극한다.

한국 축구스타 제조기

김 이사장의 손을 거쳐간 대한민국의 축구스타는 셀 수 없을 정도다. 2002월드컵 이탈리아전 골든골의 주인 공 안정환, 전남 드래곤즈의 전 감독이자 현재 아주대학교 축구부를 이끄는 하석주 감독, 현재 제주유나이티 드의 사령탑 조성환 감독부터 한국 축구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승우까지 모두 김 이사장의 작품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냐는 기자의 우문에 김 이사장은 ‘모두 다’라는 현답을 하였다. “전부 다 기억에 남죠. 모두들 하나 같이 열심히 축구만 했던 친구들이었어요. 누 구 하나를 콕 집어서 기억에 남는다고는 못할 것 같아요(웃음)”

이번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전해 들을 수 있는지 여쭈어 보자 아주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환이가 아주대학교 다닐 때, 애가 잘 생겼으니까 여자애들도 많이 따라오고 숙소이탈도 많이 했어요. 한 번은 코치가 정환이보고 머리를 깎으라고 하니까 도망을 나갔어요. 걔는 머리가 힘인데(웃음). 또 한 번은 2 학년 때 얘가 혼자 도망을 나갔어요. 그런데 처음이니까 학교로는 못 돌아가고 저희 집으로 왔죠. 얘는 본인 이 용서를 구하면 내가 금세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내가 더 놀다오라고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얘 가 머리를 빡빡 깎고 오더니 일주일 동안 운동장만 계속 뛰었어요.” 일주일 동안 운동장만 계속 돌게 된 후 에, 용서를 받고 안정환은 드디어 돌아올 수 있었다는 해프닝을 생생하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한국 축구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신성 이승우에 대한 이야기도 놓칠 수는 없었다. 이승우는 초등학교 1 학년부터 5학년까지 김희태 축구센터에서 5년 동안 기본기를 배웠다. 하지만 아직 자라나는 선수이기 때문일 까 김 이사장은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이었는데, 1학년 때 6학년 형들하고도 같이 경 기를 했으니까요. 걔가 근성이 많아요. 절대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죠. 아주 당돌하고 근성이 넘치다 보니까 스페인에서도 버텨내고 있는 거에요. 하지만 아직은 나이가 많이 어리기 때문에 인성적으로나 실력으로 봤을 때 더 지켜봐야 알 것 같아요.”

운동 선수들이 수업에 참여해야 할까

요즈음에 대학에서는 선수들의 수업 참여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전세계적으로는 운동 선수라고 할 지라도 학생이기 때문에 수업을 듣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선수들이 대부분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그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시합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김 이사장은 이러한 한국의 풍토는 잘못되었음을 강하게 주 장했다. 적어도 선수들이 영어 수업은 들어야 하고, 그 외에 자신이 원하는 전공 수업 정도는 들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만 되면 전공에 따라 나중에 일찍부터 지도자를 할 수도 있고, 경기 분석관이 될 수도 있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김희태 축구센터에서는 선수들이 월요일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섯 과목을 몰아서 수업을 듣고,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연습을 한 뒤에 토요일날 경기를 뛰는 형식이다. 또 한 목요일이나 금요일에는 강사를 초빙해 보충수업을 하면서 선수들에게 계속해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

선수들이 다른 학생들처럼 똑같은 기회를 보장받게 하기 위해, 소풍을 가는 것도 일반 학생들이랑 똑같이 하 도록 했고, 성적순으로 급식을 주기도 한 적이 있었다. 노력의 결과로, 선수들 중에서 전국학력성취도평가에 서 미달된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미달될 것 같은 선수가 있으면 학교 선생님들이 1대1로 가르쳐서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영어로 축구 수업을 진행하면서 선수들의 영어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유도해주는 프 로그램도 진행되고 있다. 이 부분에서 김 이사장의 생각이 명백히 드러났다. 그는 비록 선수라 할지라도, 그 들이 도중에 운동을 그만두게 되거나 프로에서 못 뛰게 되었을 때에 대비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주야장천 운동만 하는 선수들은 만약 그것을 못하게 되었을 때, 한 사람의 인생으로서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 에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만약에 선수가 못 되었더라도 다른 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 했다.

김희태 축구센터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이야기하는 내내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는 동네에 친숙한 할아버지 와 같은 인상을 풍겨서 타인이 편하게 이야기하게 하는 매력을 가졌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도 나타나는 그 의 축구에 대한 열정과 끈기는 우리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가 지금껏 한국 축구에 헌신해온 세월이 느껴졌고, 앞으로도 어떠한 것을 더 만들어나가게 될지 궁금하게 만드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것 하 나는 확실하다. 그가 앞으로 무엇을 하건, 그가 가는 길이 한국 축구의 위대한 발자취가 되리라는 것을.

글_배형섭 사진_최화남 일러스트_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