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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태이사장이 본 수원FC 조덕제감독 - 인터뷰(한겨레신문)새벽 운동장의 외로움이 나를 밀었네
FC KHT | 승인 2015.12.15 16:44
‘1부 진출’ 조덕제 수원FC 감독
‘악(齷)-착(齪)’

다른 말은 찾기 힘들다. 이빨을 뜻하는 치(齒)자 두개가 들어간 ‘악착’. 그를 묘사할 수 있는 딱 하나의 단어가 아닐까 싶다. 이마에 팬 깊은 주름은 고뇌의 흔적이다. 평생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뒤치다꺼리하는 것이 일이었다. 어찌 보면 당하고만 사는 우리네 장삼이사의 얼굴들이 투영된다. 그러나 모진 세파에 옹이는 더욱 실팍해지는 법이다. 이를 악물고, 또 악물고 축구 하나에 모든 것을 던졌다. 만약 감독 인증 기관이 있다면, 그는 축구아카데미 모범생이어서가 아니라 야전에서 살아남은 잡초 같은 생명력으로 자격증을 받았을 것이다.

조덕제 수원FC 감독이 5일 부산구덕운동장에서 열린 부산 아이파크와의 프로축구 승강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이겨 1부 리그 진출에 성공한 뒤 팬들을 향해 두 손을 번쩍 들고 있다. 플레이오프 기간 내내 점퍼 차림으로 나섰던 조 감독의 눈가에 물기가 보인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조덕제(50) 수원FC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뭐가 있겠습니까. 생긴 것도 동네 아저씨처럼 생겼고.” 그의 말 속에 수원FC를 4년 새 내셔널선수권 우승→K리그 챌린지 상위권→K리그 클래식 진출로 이끈 비밀이 있을지 모른다.

애들 가르치며 강압적 리더십에 회의 느껴

그는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 아니다. 스스로도 “축구대표팀에는 점만 찍고 왔다”고 했다. 뽑히기는 했어도 실제 A매치 출전 기록이 없다. 선수와 지도자는 전혀 다른 영역이고, 스타 선수와 실력파 감독의 상관관계가 높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대표팀 선수 경력이 지도자로 전환할 때 프리미엄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K리그 챌린지 팀의 감독 공모에 나섰던 한 축구인은 “면접에서 국가대표팀 출전 경험을 물어 황당했다. 도대체 감독을 뽑는 건지 선수를 뽑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조 감독은 프로 은퇴 뒤 대학 코치로 지도자에 입문했다. 19년 동안 유치부에서 프로까지 모든 연령대의 선수를 지도해봤다. 지도자 자격증은 프로팀을 이끌 수 있는 A급이 있다. 그럼에도 “1부 진출의 비결”을 물었을 때, “제가 뭐가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한 것은 왜일까.

아주대를 졸업한 그는 대우 로얄즈(1988~96년)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213경기(10골, 11도움)를 뛰었다. “대우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고 했는데, 스타 선수가 즐비했기 때문이다. 정해원, 이태호, 변병주, 김주성 등 화려한 멤버들이 포진해 있는 사실상의 국가대표팀이었다. 그런 명문팀에서 한 해를 부상으로 통째로 쉰 것을 빼면 8년간 평균 25경기 넘게 나갔다. 실력은 인정을 받아 대부분의 경기에 출전한 셈이다. 하지만 환호와 영광은 그의 차지가 아니었다.

4년 새 3부격 내셔널선수권 우승
2부 K리그 챌린지 상위권 성적

그리고, 1부 K리그 클래식 진출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
‘악착’같이 뛰어 여기까지 왔다

운동장에서 산다, 그게 최대무기
1분 더 운동장 먼저 나오고
1분 더 오래 남아 선수들 관찰
매의 눈으로 선수 다그치고 기용
고비를 넘기면 신뢰가 형성된다


당시 대우의 코치였던 김희태 포천 김희태축구센터 이사장은 “팀은 화려한 선수들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선수들을 뒷받침하는 살림꾼이 있어야 한다. 조덕제는 공격하는 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도록 뒤에서 받쳐주는 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선수였다”고 했다. 상대 핵심 공격수를 강대강으로 맞부닥쳐 쓰러뜨리고,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공격로를 열어주고, 수비 때는 최후방까지 달려가 끌어냈다. 김희태 이사장이 들려준 또다른 일화는 그라운드에만 들어가면 사람이 달라지는 조 감독의 일면을 보여준다. “한번은 허리를 크게 다쳐 일어나지도 못했다. 똥오줌도 다른 사람이 받아주었다. 그런데 조덕제가 꼭 필요한 상황이 되자 주사 맞고 전 경기를 다 뛰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절대 못 하는 일이다.”

‘악바리’ 근성을 대표하는 축구인들은 여럿이다. 1970년대의 이영무나 1980~90년대의 이영진, 2000년대의 박지성, 최근에는 활동량이 많은 이재성 등이 떠오른다. 하지만 조덕제가 보여준 집요함은 차원이 다르다. 선배 정해원은 “몸이 성하지 않아도 전력으로 뛴다. 역대 그런 선수는 없었다”고 했다. 선수 시절 무릎 4번, 발목 2번 등 핵심 부위에만 7번 수술을 했다. 관절의 연골은 거의 사라졌다. 왼쪽 무릎이 조금만 삐끗해도 아랫부분이 탈구된다. 하지만 축구 앞에선 몸을 살피지 않는다. 새벽이면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지역의 조기축구회에 나가, 지금도 ‘공만 보면 뛴다’. 

선수 시절 ‘아파치’로 불린 조 감독은 아주대 코치를 맡았을 때 강성이었다. 초기에는 선수들을 다잡고, 어영부영하는 모습을 두고 보지 못했다. 그러나 축구는 장악해서 관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유소년 코칭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 2003~2004년 2년간 김희태축구센터에서 초등·중학교 학생들을 가르친 것이 계기였다. 조 감독은 “내가 열정을 쏟고 보다듬으면 선수들이 달라졌다. 그전에는 독종이고, 강압적이고, 욕도 많이 했었는데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이 못하는 게 아니라 내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이 나의 스승이었다”고 돌아봤다.

이후 아주대 감독으로 부임해 팀을 대학 무대 강호로 만든 뒤 2011년 수원FC에서 유치부와 초등학생들을 다시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했다. 최경식 해설위원은 “아이들의 심리상태 변화를 지켜보면서 선수들에게 어떻게 동기 부여를 할 것인지를 많이 고민했을 것이다. 조 감독의 스타일은 초기의 관리형에서 지금은 자율형을 추가한 절충적인 방식으로 변화했다”고 분석했다.

성적 신통치 않자 새벽 비상을 걸다

앨릭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지도자 생활 동안 새벽 6시20분이면 어김없이 문밖에 있었다. 내가 가족과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은퇴한 뒤에나 가능했다”고 말했다. 조 감독도 마찬가지다. “새벽에 운동장에 아무도 없어도 나는 나가서 있다. 내가 미친놈”이라고 했지만, 김희태 이사장은 “원래부터 그랬다. 운동장에서 산다. 그게 조 감독의 최대 무기”라고 했다. 그런 식으로 선수들보다 ‘1분 더’ 운동장에 먼저 나오고, ‘1분 더’ 오래 남아 하는 일은 관찰이다. 때로는 체력단련장에서도 함께 근력운동을 하며 대화하기도 한다. 코치와 선수들은 조 감독의 눈을 벗어날 수가 없지만, 고비를 넘기면 강한 신뢰가 형성된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감독이 선수들의 몸상태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당연히 열심히 하는 선수가 베스트로 나가고, 선수들도 출전 기회를 잡기 위해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수원FC 선수들은 플레이오프 네 경기에서 죽기살기로 뛰었고, 후반에 늘 결정타를 날렸다. 32명의 정원 가운데 부상 등으로 4명이 빠져 28명으로 운영했지만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아, 상대팀으로부터 “수원FC의 베스트 선수는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왔다. 팀 득점력이 2013년 3위(55골), 2014년 4위(52골), 2015년 3위(69골)로 매우 공격적인 경기를 펼친다.

‘매의 눈’이 연습 때만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하반기부터 투입한 외국인 선수 시시와 인천에서 영입한 김재웅의 활약을 보면 알 수 있다. 최대한 적은 비용으로 좋은 선수를 임대해 오거나 영입해서 효과를 극대화한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오사수나에서 뛰었던 시시는 부상 후유증이 있는 선수라 다른 팀이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챙겼고, 인천에서 데려온 김재웅도 중원에서 한몫을 하며 허리를 강화했다. 수원 삼성에서 일시 임대한 김종우도 20경기 이상 뛰면서 팀을 돕더니 12월 신태용 감독의 올림픽대표팀 전지훈련에 참가했다. 조 감독은 “수원 삼성에 있으면 워낙 선수 경쟁이 치열해 경기에 많이 나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선수도 기분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외국인 공격수 자파와 수비수 블라단도 1부팀의 외국인 선수보다 몸값은 훨씬 적지만 투입 대비 산출에서는 거의 대박 수준이었다. 조 감독은 “선수들의 품성을 많이 보는 편이다. 팀에 잘 녹아들고 실력도 향상된 모습을 보면 내가 진짜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실전형 지도자인 그는 스포츠 심리나 생리, 전술 등의 이론적 접근보다는 성실성을 바탕으로 한 신뢰와 융통성 있는 관리 노하우로 체계를 잡는다. 진정성으로 대하면서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는 선수들의 비디오 분석 미팅에는 참석하지 않고, 주로 코치들과 함께 지난 경기의 비디오를 보며 장단점을 분석한다. 조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비디오 분석을 해봤자 괜히 잘못된 점만 지적해 오히려 심리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다”고 했다. 성적이 신통치 않았던 올해 8월에는 새벽에 선수들을 깨우는 비상 수단을 채택하기도 했다. 프로그램도 없이 자율적인 개인훈련 시간으로 정했지만 아침 6시30분부터 7시30분까지 새벽훈련을 한다는 것은 다른 프로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다. 조 감독은 “밥맛이 좋아진 선수들이 아침밥을 많이 먹기 시작했다. 성적은 아침 먹는 선수들 밥숟가락을 보면 안다. 그 뒤로 성적이 잘 나왔고, 플레이오프 네 경기에서도 쓰러지는 선수가 없었다”고 했다. 

수원FC의 팀색깔인 막공(막 공격), 닥공(닥치고 공격)은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다. 또 탄탄한 기본기와 섬세한 패스 능력이 없으면 이뤄질 수 없다. 의미 없는 롱패스에 질색을 하고, 패스와 순간적인 역습으로 골문에 빨리 도달하는 직선적인 축구를 편다. 선수 시절 수비형 미드필더, 측면 풀백, 필요시 공격수로도 나섰던 원조 멀티플레이어의 역량을 통해 선수들의 심정을 이해하면서, 적재적소에 배치해 파괴력을 높인다. 김희태 이사장은 “프로에서는 이기는 축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점유율을 포기하고 단 몇번의 패스로 골문에 접근해 슈팅하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내년 시작될 1부 리그 싸움은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2부에서 성공했던 용병술이 1부에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더욱이 올 시즌 주축 공격수인 임성택과 수비수 김창훈은 상무에 입대하고, 김재웅은 안산경찰청으로 가 공백이 생겼다. 수원 삼성에서 임대한 김종우도 원 소속팀으로 복귀한다. 수원시가 1부팀 규모에 맞추기 위해 50여억원의 지원 예산을 100억원 가까이 올린다 하더라도 선수의 영입이 쉬운 것은 아니다. 새로운 선수들과의 호흡을 맞추는 데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자파 등도 타 구단의 러브콜을 받는 등 주전의 절반 가까이가 변수가 됐다. 더욱이 K리그 클래식은 2부인 챌린지와는 다르다. 김태륭 해설위원은 “조 감독이 빠른 선수를 좋아하고, 수원FC 선수들이 훈련이나 실전에서 매우 전진하는 색깔을 보였지만 수비는 약한 편이다. K리그 1부는 경기의 템포가 훨씬 빠르고 선수들의 수준이 높아 쉽지 않은 싸움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원 삼성에 꼭 한번은 이길 것

조 감독도 내년 시즌 준비에 정신이 없다. 일단 정들었던 선수들 가운데 일부한테 일대일 면담을 통해 “방출”을 통보했다. 또 타 팀의 주전급이나 후보를 포함해 필요한 자원 명단도 작성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명가인 수원 삼성과 벌이게 될 ‘지역 더비’다. 조 감독은 “수원 삼성을 상대로 내년 세번을 싸우면 꼭 한번은 이겨야 할 것이다. 우승팀 전북 현대와 만나서도 공격적으로 맞설 것이다. 누구를 상대해도 수원FC가 공을 예쁘게 찬다는 인식을 심어줄 것”이라고 했다. 부산 아이파크를 2부로 끌어내리고 1부로 올라간 만큼 책임감도 느낀다. 부산의 전신은 자신의 친정팀 대우여서 조 감독은 5일 구덕운동장에서 열린 승강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이겨 승격을 확정했을 때 유쾌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더 잘해야 한다고 느낀다. K리그 클래식에는 최강희 전북 감독, 김학범 성남 감독, 박항서 상주 감독을 제외하고는 모두 후배다. 조 감독은 “후배 감독들한테도 배워야 한다. K리그 클래식에 처음 임하는 만큼 후배들과 통화를 하면서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얻고 싶다”고 했다.

지난 7일 오후 2시 찾아간 수원FC의 숙소인 종합운동장 1층은 프로팀 시설이라고 하기에는 누추했다. 감독방도 클럽하우스를 갖춘 명문팀의 탁 트인 공간이 아니라 장판을 깐 바닥 위에 소파와 책장, 옷걸이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아! 이래서 숙소는 안 보여주려고 했는데…”라며 겸연쩍어한다. 그래도 요즘처럼 유명세를 타는 일도 드물다. 5일 1부 승격 뒤 며칠간 이뤄진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는 30회를 넘는다. 자기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그로서는 고역이 아닐 수가 없지만 축구를 알리고, 수원FC를 알리는 것이 기쁘다고 했다. 그는 “언제 조덕제한테 이런 날이 있겠어요”라고 했다. 특유의 소박한 말이지만, 그렇다고 조직을 극적으로 바꾸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이라는 진실까지 가리지는 못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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