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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선수 이전에 사람 먼저 돼야"...김희태 포천 KHT 축구센터장
FC KHT | 승인 2018.10.10 16:26

박지성,안정환,이승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인정하는 전현직 국가대표 축구 스타 플레이어다.

우리를 울고 웃게 했던 아시안게임의 축구 열기가 가시질 않은 가운데 축구 대표팀 주역으로 뛰며 금메달을 거머쥔 이승우 선수의 퍼포먼스는 당연 화제였다.

또 앞서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뤄낸 박지성,안정환 전 국가대표 선수 역시 우리의 가슴 한켠에 자랑으로, 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렇듯 대한민국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국가대표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이 선수들은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 바로 다듬어 지지 않은 원석인 시절, 한국축구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는 김희태(65) 포천 KHT 축구센터장의 가르침을 받은 것.

선수시절 차범근 전담마크맨으로 유명했던 국가대표 수비수 출신인 김 센터장은 그의 명성만큼이나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청소년과 성인 국가대표, 대우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 선수, 국가대표팀 코치, 대우로얄즈 감독, 명지대 감독 등을 역임한 그는 우리나라 축구계의 살아있는 거장으로 불린다.

이런 그가 환갑이 넘어서도 포천에 위치한 ‘김희태 축구센터’에서 유소년 발굴과 육성에 전념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50여년을 축구인으로서 살아왔다. 긴 여정에 대한 감회를 말해달라.

“반 백년을 축구 하나만 보고 걸어왔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하나. 시작부터 이야기를 한다면 이곳 포천에 위치한 일동초등학교에서 취미로 처음 축구를 접했다. 정식 운동부는 아니었고,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모여서 공을 찬 정도다. 그리고 운동에 재능을 보여서 중학교를 서울로 유학을 갔다. 중학교를 입학하고 처음에는 배구 선수를 했다. 운동신경이 있어 나름 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키가 작아 배구는 힘들지 않겠냐는 감독님의 말을 듣고 축구로 전향했다. 아마 그때부터가 내 축구 인생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2학기때 일이다. 이후 5년 반만에 청소년 국가대표가 됐다. 주위에서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 또 그 해 국가대표 2진에도 발탁이 됐다. 이후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로 독일 뭔헨 월드컵을 참가했고, 특히 남북 공동우승을 했던 1978년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도 선수로 뛰었다. 아시안게임이 끝난 이후에는 나라에서 주는 훈장도 받았다. 한국 주택은행과 대우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 등 프로 팀에서도 선수생활을 했다. 그러다 무릎을 크게 다쳐 재활과 복귀를 반복했고 선수생활이 더 이상 어렵다고 판단해 은퇴를 했다. 은퇴후에는 쭉 지도자의 길을 걸어왔다. 아주대, 대우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 국가대표 등에서 코치을 하며 경험을 쌓았고 프로팀을 거쳐 명지대 감독으로 8년을 생활했다. 그리고 현재는 보다시피 의정부FC와 김희태축구센터를 운영중이다. 내 축구인생은 영광의 순간뿐만 아니라 좌절의 고통도 공존한다. 만감이 교차하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니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선수시절이었을 때와 지금 축구 환경을 비교하면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아무래도 돈이다. 1976년 우루과이에서 프로 선수들까지 참가하는 세계대학생축구 선수권대회가 열렸다. 현재 유니버시아드 전신인 대회인데 쉽게 월드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대회에서 우리나라가 세계대회에서는 아직까지도 유일한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당시 양정모 선수가 올림픽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따서 모든 관심이 그쪽으로 향했다. 아쉽게도 우리 축구 우승 소식이 언론에 나오지도 않고 완전히 묻히고 말았다(웃음). 이때 정말 악으로 깡으로 국가대표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몸이 부서져라 뛰었다. 부상자가 속출하고 선수들 상태가 처참했지만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애국심과 정신력으로 모두가 한 마음이 되서 죽어라 뛰었다. 내가 선수시절 뛰던 승리수당과 현재 승리수당을 비교해 보면 아마 100배 이상은 차이가 날 것이다. 하지만 모든게 풍족해진 현재는 그때와 비교해 무언가가 빠진 느낌이다. 또 재미난 이야기로 올림픽은 공산당도 우승하지만 월드컵은 공산당이 우승을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 정신력이 돈 앞에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실제 증명이 된 말이다. 북경 아시안게임에 홍명보, 황보관, 최순호 선수 등을 데리고 참가한 적이 있다. 그때도 병역 혜택이 걸려 있었는데 참 아쉽게 졌다. 지고나서 선수들이 울고불고 아주 난리가 났다. 돈이라고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본인에게 어떤 혜택이 있어야지만 전투력이 상승하고 투혼을 발휘하는 그런 모습보다는 항상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화려한 이력 아래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어느 딱 한 순간을 꼽기가 어렵다. 그냥 제자들이 잘 됐을때가 기분이 좋다고 말하고 싶다. 최근에는 이승우 선수가 잘돼서 기분이 좋았다. 어린 시절 여기서 처음 축구를 배우고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넘어가 좋은 성인 선수가 됐다는게 자랑스럽고 흡족하다. 여지껏 60여명의 대표 선수를 배출했는데, 지도한 선수들이 꿈을 이뤘을때 누구보다 큰 보람을 느끼고 머릿속, 가슴속에 새겨지는 것 같다.”

―지난 아시안게임에서 이승우가 포함된 대한민국 남자 축구가 금메달를 따는 쾌거를 이뤘다. 메달의 주역인 이승우 선수의 은사로 유명한데, 이승우 선수를 지도할 당시 어땠나.

“승우는 초등학교 1학년때 여기에 왔다. 승준이라고 승우 형이 있었는데, 형을 따라 축구를 배우려고 왔었다. 재능만큼은 최고였고 공을 다루는 기술이 아주 뛰어났다. 근성도 있어서 정말 물건이다 싶었다. 그래서 1학년인데도 불구하고 6학년이 뛰는 경기에 뛰게했다. 집중적으로 키워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이내 승우는 센터 마스코트가 됐다. 여기(센터) 숙소 말고 인근 청계에 조그마한 숙소가 있었는데 승우는 거기서도 코치들과 공을 찼다. 코치가 질려할 정도로 말이다. 밥만 먹고 축구를 한 것이다. 지금 승우를 보면 좁은 공간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기술이 굉장히 좋지 않나. 아마 어린시절 좁은 공간에서의 훈련이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승우가 까불기도 많이 까불고 크고 작은 사건사고도 있었지만 축구에 대한 집착과 집념만큼은 어릴때부터 대단했다. 그렇게 5학년 말까지 있다가 홍명보 축구교실로 보냈다. 거기서 대동초로 전학을 갔고 이후 스페인 바르셀로나까지 가게 됐다.”

―이승우 선수외에도 박지성, 안정환 등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이 김희태 감독님을 거쳐간(지도) 것으로 알려졌다.

“내가 명지대 감독으로 있을 당시 수원공고 코치중에 내 제자가 있었다. 그때 수원공고에 (박)지성이가 있었다. 어느날 코치가 나를 찾아와서 박지성이라는 선수가 있는데 아주 성실하고 발전가능성이 크다고 하더라. 그런데 사람들(다른 감독)에게 아무리 말을해도 반응(관심)이 없다며 연습게임이라도 뛰게 해 달라며 나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래서 2경기를 뛰게 해서 보니깐 아주 마음에 들었다. 당시 지성이는 몸이 작고 약해서 아마 다른 사람들 눈에는 잠재력이 크게 보이질 않았을 것이다. 지성이를 뽑아야 하는데 축구부에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입학을 시켜야겠다는 마음에 노갑택 감독이 있던 테니스부에 남는 자리가 있냐고 물어봤다. 다행히 한자리가 남았다고 하더라. 명단을 빌려쓰고 지성이를 입학시켰다. 입이 아프게 이야기했지만 지성이는 천운을 타고 났다. 올림픽, 월드컵 또 일본 프로무대 진출할때까지 내가 관리를 해줬다. 안정환이 같은 경우는 잘생긴 외모로 아주 인기가 많았다. 여학생들이 정환이를 보려고 기를 쓰고 찾아왔다. 뭐 그 정도만 말하겠다.(웃음)”

―축구 선수를 꿈꾸는 유망주들을 보는 안목이 대단하다. 특별하게 주안점을 두고 보는 것이 있나.

“기술이나 전술, 체력, 심리 등 평가하는 항목이 있다. 선수를 평가할때 10점 만점에 10점짜리가 한 두개는 있어야 된다. 특출난게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머지가 부족하면 훈련을 시켜서 끌어올리면 된다.공을 잘 찬다는 아이들을 보면 평가 항목중 10점은 없고 평균 8~9점을 받는다. 그런 선수는 안뽑는다. 박지성의 경우 평가 항목에서 지구력과 시야력이 굉장히 좋았다. 또 빈 공간에서 찾아 들어가는 능력이 아주 뛰어났다. 그래서 그 능력들을 토대로 나머지 부분을 훈련시켜 1년만에 올림픽 대표를 만들었다.”


―자신의 이름을 건 ‘김희태 축구센터‘를 만들고 대한민국 유소년 선수 발굴및 육성에 큰 기여와 이바지를 하고 있다. 센터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진출하고 축구붐이 일었다. 당시 경기도지사로 있던 손학규 지사를 월드컵 멤버였던 박지성, 안정환 선수를 데리고 만나러 갔었다. 그 자리에서 손학규 지사가 한국 축구가 더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라고 묻자, 경기도에 축구센터가 남부(용인)에 하나 있는데 북부에도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도와 시의 지원을 약속받고 고향인 포천에 축구센터를 조성하기로 계획했다. 계획에 앞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팀을 먼저 창단했다. 창단식에 차범근, 허정무, 박지성, 안정환 등 한국의 내노라하는 축구인들을 포함해 8천여명이 왔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용역까지 끝낸 축구센터 건립사업을 도와 시가 예산상의 문제로 지원 불가 통보한 것이다. 성대하게 창단식까지 했는데 졸지에 사기꾼으로 몰릴 위기에 처했다. 도와 시는 의지만 있었던 것이다.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쉽게 말해 폼만 잡은 거다. 그래서 할수 없이 개인적으로 땅을 보러 다니며 많은 우여곡절 끝에 사비를 들여 축구센터를 만들게 됐다. 그 이후로 명지대 감독을 내려놓고 축구센터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 고생을 많이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과정이 순탄치 않았을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래라 저래라 말로만 하는게 아니라 행동으로 한국축구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말이다.”

―축구를 배우다가 두각을 못 내고 현실의 벽을 부딪친 선수의 경우는 어떤 길을 걷게 되나. 방향이나 진로가 궁금하다.

“센터에서는 기본적으로 대학을 목표로 공부와 함께 운동을 가르치고 있다. 운동을 배운다고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실제 작년 여기서 선수생활을 하던 한 학생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해 서울대에 입학하기도 했다. 또 현재 일동고 전교 1등을 한 친구도 여기서 선수로 활약중이다. 기본적으로 운동을 한다고 공부를 절대 등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센터 자체적으로 선수에게 진로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작년부터는 해외 유학을 보내기도 했다. 3명을 보냈는데 모두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니고 있다. 이 친구들의 경우 나중에 지도자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밖에도 분석관, 심판, 에이전트, 마케터 등 축구와 관련된 진로로 이끄는 경우도 있다. 센터 출신의 한 선수는 영국의 미들섹스대학원로 진학한 후 현재 여기 코칭스태프로 있다. 자랑같지만 우리 아들의 경우도 여기서 선수생활을 했었는데 현재는 변호사로 활동중이다.”

―포천축구센터는 축구외에도 인성과 공부를 가르치는 곳으로 유명하다.

“말했다시피 공부는 기본적으로, 아주 기본적으로 하는 것이다. 공부가 인생에 전부는 아니지만 학생의 전부는 공부다. 해외 진출이 늘고 있는 추세에 영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센터에서는 인성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어떤 일을 하든 사람이 돼야 한다고 늘 선수들에게 말한다. 센터내에서 구타라든지 폭언,욕설 등은 절대 못하게 한다. 선후배간 괴롭힘이나 따돌림, 부조리가 있으면 바로 퇴출이다. 한해 몇 번씩 인성 관련 전문 강사와 축구계 유명인사들을 초빙해 교육을 하기도 하고, 생활속에서 인성을 바르게 기를수 있는 교육을 꾸준히 하고 있다.”

―당장 성적을 내야 하는 현재 유소년 축구와 미래를 위한 육성이 필요하다는 갈등이 있다는 의견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시스템 전체를 바꿔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우리 센터부터라도 조금씩 바꾸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려운 부분이다. 나와 함께한 또 나를 거쳐간 제자들도 모두 인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갑자기 큰 변화를 바랄순 없지만 문제를 알고 있으니 조금씩 천천히 축구 선진화를 위해 모두가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이 어떻게 되는가.

“그동안 센터를 운영하며 선수들을 반복훈련 시키면서 개발한 훈련 프로그램이 있다. 생체역학적인 힘을 이용한 신기술이라고 보면 된다. 현재 이 신기술(훈련 프로그램)을 중국축구협회와 합작해 보급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다. 슈팅,드리블,패스 등 각 분야의 전문 클리닉 구장에서 센터의 신기술을 접목시키고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이 신기술은 아직 검증이 안돼 국내에는 보급이 어려운 실정이다. 중국 축구협회 관계자들은그동안 센터를 수 차례 찾아와 신기술을 보고 갔고, 이번에 도입을 결정했다. 아마 다음달부터 숭실대 소프트경영학과 김계영 교수와 함께 연구를 통해 이 신기술에 대한 검증도 진행을 할 계획이다. 끝으로 인재 육성말고는 별 다른 뜻이 없다. 지금까지 해 온 것 처럼 대한민국 축구발전을 위한 후학양성에 힘쓰도록 하겠다.”

김동욱 기자

출처 : 중부일보(http://www.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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