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리닉 전용구장' 슈팅 훈련 장면. / 포천=이민성 기자

여기저기 형형색색의 불빛들이 반짝였다. 골대에는 초록불이 켜졌고 콘은 주황색으로 빛났다. 패스를 주고받는 벽은 파란색이 감쌌고 계단식 훈련대는 빨간색으로 깜빡였다. 불빛 사이로 축구공이 오가는 걸 보니 축구장 번지수를 잘못 찾진 않은 것 같다. 누구의 말마따나 음악만 깔리면 축구장보다는 클럽에 가까울 정도였다. 지난 27일 개장한 경기도 포천 소재 김희태 축구센터의 ‘클리닉 전용구장’의 모습이다.

김희태 축구센터 김희태(62) 이사장은 개장식 테이프를 자르고 뿌듯한 눈빛으로 훈련장을 바라봤다. 김 감독은 오랜 연구 끝에 ‘클리닉 전용구장’을 만들었다. “일괄적인 학교 수업이 축구에서의 팀 훈련이라면 클리닉은 맞춤형 과외”라고 설명했다. 선수들의 부족한 부분을 콕 짚어 기량을 보완할 수 있다는 자랑도 곁들였다.

정식 규격의 축구장보다 조금 작은 크기인 클리닉 전용 구장에 슈팅, 드리블, 패스 등 분야별 훈련 시설이 알뜰하게 들어찼다. 대다수 훈련 시설들에 ‘빛’을 달았다. 김 이사장은 “우리나라 선수들은 순간 판단 능력이 떨어진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소리를 이용한 훈련법 등을 생각해봤지만 불빛이 순간 반응 속도를 높이는 데 가장 좋다고 판단했다”며 ‘빛’을 이용한 훈련 시설을 만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어디서 구할 수 있는 시설이 아니라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축구센터 직원들이 목장갑을 끼고 울타리와 골대 등을 세웠다. 각종 LED 장치도 직접 설치했다. 빛이 나는 콘은 화장실 센서등에서 착안했다. 방향과 세기를 조절할 수 있는 슈팅 기계도 개발 중이다. 훈련장과 시설을 만드는 데 2억 원이 넘게 들었다.

슈팅 훈련 구역은 3면이 골대로 둘러 싸여있다. 각 골대의 귀퉁이 네 곳에는 지름 1m가 조금 넘는 링이 설치돼 있고 링 안쪽에는 조명이 놓여 있다. 선수들은 슈팅 순간 불이 켜지는 링에 골을 넣어야 한다. 각 골대당 4번씩 총 12개의 슈팅을 50초 안에 차야한다. 보기엔 쉬워 보여도 만만치가 않은 모양. 8개 이상 넣은 선수를 찾기 힘들었고 훈련을 끝낸 선수들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김 이사장이 12개를 다 넣는 선수에게 상금 200만 원을 주겠다고 했을 정도.

▲ 패스 훈련 모습. / 포천=이민성 기자

패스 훈련도 비슷한 방식이다. 앞면이 평평한 5톤짜리 돌벽 4개를 둘러 세워놓고 LED를 감쌌다. 선수들은 불빛이 들어오는 돌에 패스한다. 돌은 곧바로 공을 쳐 낸다. 패스를 주자마자 받을 준비를 하면서 다음 패스 방향까지 살펴야한다. 드리블 훈련장에는 가로세로 약 15m의 구역에 불빛이 들어간 콘 32개를 놓았다. 불빛에 따라 요리조리 공을 드리블한다. 균형 감각을 키우는 계단 훈련대에서는 빛이 반짝거리는 속도에 따라 선수들이 발을 굴러야한다. 훈련장 안쪽에는 점프 훈련과 헤딩 훈련 시설도 마련했다.

선수들은 이색 훈련을 꽤 즐기는 모습이었다. 웃음이 뒤섞였다. 누가 슈팅을 몇 개 넣는지 은근한 자존심 경쟁도 붙었다. 잘하는 선수들에겐 “오~”가 뒤따랐고 못하는 선수들에겐 “우~”가 쏟아졌다. 선수들은 색다른 시설에 들뜨면서도 진지하게 땀을 흘렸다. 이날 개장식 훈련에 참가한 K3리그 의정부FC 이지훈은 “빛을 봐야하기 때문에 주위를 계속 살펴야 한다. 기존 훈련과 달라 힘든 부분이 있는데 순간적인 능력이 좋아질 것 같다. 반복적이지 않아서 쉽게 질리지도 않는다”고 했다.

▲ 대형스크린에 선수들의 훈련 모습이 나오고 있다.

클리닉의 맞춤 과외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영상 분석을 통해 더 과학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카메라로 선수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찍어 곧바로 피드백을 준다. 예를 들어 한 선수의 슈팅 모습은 10초 뒤 훈련장에 설치된 300인치 대형스크린을 통해 비치게 된다. 선수들은 즉각 잘못된 부분을 고칠 수 있다. 또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였던 김연아가 사용했다고 알려진 영상분석 프로그램인 ‘다트피시’를 사용해 느린 동작, 동작 겹치기 등 기술로 선수들의 자세를 바로 잡는다. 드론(무인 항공기)을 이용해 훈련 모습을 하늘에서 담는다. 드리블 장면이나 전술적인 움직임을 파악할 때 효과적이다.

김희태 축구센터에 자녀를 둔 학부모는 ‘클리닉 전용구장’에서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눈에 띄고 개인 레슨 방식이어서 마음에 든다”며 “충분히 받아볼 만한 프로그램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희태 이사장은 “부족한 부분을 재미있게 훈련할 수 있다”며 “한 달 뒤 그리고 두 달 뒤에 선수들이 본인이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빛’이 반짝거리는 훈련장에서 선수들의 꿈도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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